필리핀 공화국(필리핀어: Republika ng Pilipinas 레푸블리카 낭 필리피나스, 영어: Republic of the Philippines 리퍼블릭 오브 더 필리핀스[*], 스페인어: República de Filipinas 레푸블리카 데 필리피나스[*]), 약칭 필리핀(필리핀어: Pilipinas 필리피나스, 스페인어: Filipinas 필리피나스[*])은 서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이다. 북쪽의 루손 해협 건너편에는 타이완, 서쪽의 남중국해 건너편에는 베트남이 있다. 남서쪽에 위치한 보르네오 섬 사이에는 술루 해가 있으며, 남쪽의 술라웨시 해의 건너편에는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있다. 동쪽에는 필리핀 해가 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이유로서 필리핀은 지진과 화산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7,107개의[1]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 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섬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주요 도시로는 마닐라, 다바오, 케손시티, 세부 등이 있다.
인구는 1억 명으로,[2]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또한, 약 1,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존재한다. 선사시대에 필리핀에 거주했던 사람들 중에는 네그리토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스트로네시아어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착했고, 말레이인의 문화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이 전래되었다. 또한, 무역으로 중국 대륙의 문화가 필리핀에 영향을 끼쳤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식민 지배 동안에 마닐라는 아카풀코와의 무역 연결점이 되었으며, 필리핀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동안 유지된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과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전해졌다.
필리핀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 사정이 좋은 나라였으나, 마르코스 정권의 독재와 부패, 과도한 빈부 격차로 인해 경제적으로 몰락했다. 수도는 메트로 마닐라이며, 공용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이다.
우라늄 동위원소측정법으로 6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칼라오 원인의 중족골은 오늘 날까지 이 제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물이다.[3] 이전까지는 탄소동위 원소 측정법으로 약 24,0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팔라완에서 발견된 타본 원인이 가장 오래된 인류였다.[4][5] 네그리토인들은 또한 이 제도에 정착한 가장 초기의 사람들이었지만, 필리핀 제도에서 그들의 초기 정착은 언제였는 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6]
고대 필리핀인들의 기원에 대해 상반되는 여러 개의 학설이 있다. 가장 널리 수용되는 언어학적, 고고학적 증거는 “타이완 유래설 모델”이며, 이것은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량주 문화[7] 와 같은 양쯔강의 신석기 문명으로부터 온 후손이라는 타이완에서 왔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들은 필리핀에 기원전 4000년 전에 왔다고 하는 것이다.[8][9] 기원 전 1000년경에, 이 제도에 살던 사람들이 네 개의 사회 집단으로 발전했으며, 사냥-채집을 하는 종족, 전사 사회, 고원 금권정치, 그리고 해양 항구 집단으로 나눠졌다는 것이다.[10]
여러 섬에 각기 다른 부족들이 나뉘어 있어 통일 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1521년에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 도중 막탄섬에 상륙하면서 유럽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이후 에스파냐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으며, 19세기 말까지 300년 이상 계속된 에스파냐의 통치는 필리핀을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교회 국가로 만들어서, 필리핀은 수도사의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름은 필립 2세 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나 에스파냐에서 온 식민통치 권력과 결탁하여, 종교권력을 휘두르는 교회의 압제에 항거하여 필리핀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19세기 말 시작되어 각지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괌 등 지배권을 양도했다.
필리핀 혁명과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필리핀인의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제1공화국이 건립되었으나 곧바로 미국의 불인정과 함께 식민화가 시작되어 이에 저항하는 필리핀인과 미국-필리핀 전쟁이 일어났다.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지휘아래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많은 희생자를 낳고 굴복하여 필리핀 제 1공화국은 붕괴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많은 희생으로 인해 미국의 통치는 스페인식 압제보다는 좀 더 자치권을 많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1916년 필리핀의 자치법인 존스 법이 통과되었으며 이때의 미국의 필리핀 통치는 다른 서양국가와는 달리 비교적 자율적인면이 있었다. 그리고 필리핀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식민지였기 자체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하지못해 바라던 만큼의 이익을 얻을수없었다. 미국의 식민통치때는 공중보건 개선과 무료 보건소 혜택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었고 이로인해 인구도 큰폭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같이공부할수 있는 남녀공학제도 도입 되면서 남성과 여성 도 똑같은 권리를 누리게되어 처녀도 혼자 외출할 수 있었으며 여러 전문직을 비롯해 어떤직장에서나 평등하게 일할 수 있게되었다. 새 토지 정책, 미국과의 자유무역, 농업성장,교통 통신의 발달, 새로운 산업, 은행의 등장, 공중보건과 위생의 향상등으로 인해 인구가 약 3배 가까이 늘었으며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 후에도 로마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이 주동하는 필리핀 민중들의 독립투쟁은 계속되고[11] 혁명 정부도 수립되었으나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34년 미국 의회에서 타이딩스-맥더피 법이 통과되어 10년 후에 필리핀 독립이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1935년에는 필리핀 연방이 조직되었고 마누엘 케손이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은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일본은 1943년에 필리핀 독립을 승인했고 대통령에는 호세 파키아노 라우렐이 선출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마누엘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뒤 필리핀은 아시아권에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정치적/경제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필리핀은 미국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대신, 공군/해군기지를 빌려주기로 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초 마르코스는 '민주 공화국'을 내세우고, 효율적 세제운영과 대외차관 유치 등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해 이슬람세력 등 반정부세력들의 반발에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독재와 장기집권, 본인과 일가의 부정부패로 인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외에서 거센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암살을 계기로 마르코스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고, 1986년 베니그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가 야당 단독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자 숱한 선거부정으로 겨우 재선됐다. 이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었고, 결국 마르코스는 하야했다.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임기 초반부터 테러가 일어나,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92년에는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피델 라모스가 대통령이 되었고, 1998년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대통령이 되지만, 부패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 2001년 중도사임했다.
에스트라다의 사임으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의 딸인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하지만, 부패에 연루되어 결국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현재는 하원의원으로 재직중이다.
2010년 코라손 대통령의 아들인 노이노이 아키노가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아로요는 선거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2]).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의 동북단에 있으며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대륙 사이에 자리 잡은 7,10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무인도에 불과해 사람이 사는 섬은 약 880개뿐이며 이름이 붙여진 섬도 약 2,700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필리핀 군도의 섬들은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 활동도 활발하다. 섬들의 지형은 대체로 산이 많으며, 평야는 해안에 접한 저지대를 흐르는 하천 유역에 한정되어 있어서 농경지는 별로 없다. 가끔 농경지가 발견되어도 거의 계단식의 형태를 띠고 있을것이다.
필리핀은 화산 덕택으로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많다. 특히 이 나라 최대의 섬인 루손 섬의 마욘 산은 원뿔형의 활화산으로 무척 아름답다. 루손 섬과 민다나오 섬의 면적이 전 국토의 70%를 차지한다.
열대성이며 몬순과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1년 내내 기온이 높은 마닐라의 연평균 기온은 27도이다. 몬순은 6월부터 10월까지는 남서에서, 11월부터 3월 말까지는 북동에서 불어온다.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며 군도의 동쪽과 서쪽에서는 건기와 우기가 서로 엇갈린다. 태풍은 7월에서 10월까지의 시기에 내습하는데 특히 루손 섬은 매년 태풍의 통로가 되고 있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필리핀인 중 28.1%는 타갈로그 족, 13.1%가 세부아노 족, 일로카노 족 9%, 비사야 족 7.6%, 힐리가이논 족 7.5%, 비콜 족 6%, 와라이 족 3.4%, 그리고 25.3%가 기타로 구성되어 있다.[12][13]
이것은 다시 보다 뚜렷한 비종족 집단으로 쪼개어져 나눌 수 있으며, 모로 족, 카팜팡안 족, 팡가시난 족, 이바나그 족 그리고 이바탄 족으로 나눌 수 있다.[14] 뿐만 아니라, 이고로트 족, 루마드 족, 망간 족, 바자우 족, 그리고 팔라완의 부족과 같은 토착민들도 존재한다.[15] 아에타 족과 아티 족 같은 네그리토들은 이 제도에 초기에 정착한 고대 민족으로 여겨진다.[16]
이들 민족 외에 10%는 화교와 메스티소라고 불리는 혼혈족이 차지한다. 화교가 경제생활에 공헌하고 있다면 메스티소는 경제적으로 윤택하며 고등 교육을 받아 사회적으로도 상류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는 85%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신봉한다. 이 밖에 군도의 남쪽에 거주하는 모로족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도이프가오족 등의 민족은 정령을 숭배한다. 복잡한 민족만큼이나 언어 또한 많아 7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 타갈로그어이다. 필리핀 국민은 말레이족을 근간으로 하여 중국인, 미국인, 스페인인 및 아랍 혈통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5월 기준으로 필리핀 인구는 7천6백5십만명이며 각 인종의 구별은 거의 없다. 서구 국가의 오랜 식민 통치 역사와 무역 상인들의 혈통이 섞여 외모와 문화 모두에서 동양과 서양이 독특하게 혼합된 국민이 나타났다. 중국어 사용 주민도 조금 있다.
필리핀 국민의 특성은 실제로 모든 문화가 조금씩 섞여 있다. 필리핀인들의 유명한 친족 정신은 말레이족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긴밀한 가족 관계는 중국인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경건한 신앙심은 16세기 기독교를 전파한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았다. 타갈로그어가 공식 국가언어라면 영어는 비공식 언어로 간주된다.
필리핀 민족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지역에 따라 구별되며 각 지역적 집단은 상이한 풍습과 방언을 통해 구별할 수 있다. 북부 지역의 일로카노 주 지역 주민은 강건하고 검소하며. 중부 평야지대의 타갈로그 주민은 근면하다. 중부지역 섬으로부터 비사야의 주민들은 낙천적이며 민다나오 지역에는 각색의 원주민과 경건한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원주민 부족 공동체는 군도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적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세분되는 필리핀에는 111 종 이상의 방언이 존재한다.
필리핀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문화 혼합 지역이다. 전통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공존한다. 민족의 배경에는 인도네시아계 민족과 말레이계 민족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중국과 스페인계 혈통의 영향도 받았다. 미국 통치 및 무역 상인들과의 접촉 역사를 통해 동양과 서양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으며 이러한 영향은 필리핀 국민의 외모와 문화에 나타난다.
필리핀 전국의 행정 조직은 17개 지방(Region), 81개 주(Province), 117개의 시(City), 1,501개 지방 자치체(Municipality), 41,982개 마을(Barangay, 바랑가이)이 운영 중이다.
수도는 14개 시와 3개 읍으로 구성된 메트로 마닐라이다. 메트로 마닐라통괄하는 행정 기관은 메트로 마닐라 개발국(Metro Manila Developement Authority, MMDA)으로 광역 행정 업무를 협의, 조정하고 있다.
1965년 대통령에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73년 국민 투표를 통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20년 장기독재 끝에 1986년 2월 민중들과 필리핀의 전통 교회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중항쟁으로 마르코스가 축출되고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신정부가 출범했다.
1987년 2월 필리핀 신헌법에 대한 국민 투표에서 아키노 정부는 76.3%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3권분립의 대통령 중심제에 대통령의 임기 6년, 중임 불가를 규정한 새 헌법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산당과의 소모적인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인 공산당 합법화 등의 공산주의에 대한 유화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군부 쿠데타가 반발하고 우파 세력의 반발이 거세지자 아키노 대통령은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좌파·공산세력도 이에 강경으로 대처했다. 외교정책은 독립 후 친미 정책으로 일관했다. 1966년에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에 가맹하고, 1967년에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에 가입했다. 1970년대부터 독립 외교를 표방하고 중국·소련과의 광범위한 관계 수립, 동남아 제국 및 일본과의 관계 유지, 미국과의 균형관계 모색 등을 골자로 하는 신외교정책을 1973년 선언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코라손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라모스가 당선됐으며 1998년 5월에는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당선되었다. 2001년 1월 아로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사바주 일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외교문제화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17]
필리핀의 치안은 불안 요소가 존재 한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반면에 경찰력은 상당히 약하다. 경찰은 마을의 게이트를 지키거나 경찰서와 순찰자를 이용하여 거리 치안과 범죄를 예방하나, 작은 범죄(소매치기, 사소한 다툼) 등은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게에는 안전요원이 배치돼있다. 안전요원은 가게주와 계약을 맺고 손님과 가게를 보호한다. 가끔씩 범죄가 일어날 경우 가지고 있는 총기를 이용해 관광객이나 행인을 보호하기도 한다. 컨테이너 박스나 가게 앞에 서서 문을 열어주거나 화장실을 안내해주는 도시 안내원 역할도 하고 있다. 그들의 셔츠 주머니에는 Fisher, Security 등 안전 요원을 뜻하는 단어가 쓰여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키는 도시에도 관광객이나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범죄가 꾸준히 발발하는 등 치안상태는 불안하다고 할 수있다.
원칙적으로는 징병제이다. 2009년 1월 31일부터 육군, 해군, 공군 모두 모병제(지원제)이나, 대학 졸업자는 예비군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18~25세를 대상으로 징병하였다. 장교로는 21~29세까지 모집한다. 미혼 필리핀 시민권자 (기혼 시민권자나 외국인 입대 금지)이면 남녀 모두 입대 가능하다. 이후 예비역으로는 56세까지 소속된다.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이후, 근래에는 거의 예비역으로만 소집된다. 2010년 이후 헌법 상 완전히 폐지할 계획이다. 중산층가정의 기준인 경찰PO2기준 급여는 2만페소 약 50만원정도이다.(2017년기준)
이 나라는 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할 수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총기 소지에 대한 마땅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어린이들도 일반 총포점에서 탄약을 살 수 있다. 총포점은 큰 상가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많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더욱 위험하다. 택시 탑승이나, 밤늦게 거리에서 산책하는 일은 위험하며, 위협하는 일이 있어도 실랑이를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 세부등 관광지라도 호텔주변에 대해서는 오후 6시이후의 외출은 대단히 위험하다.(2015년기준)
모순되게도 총기를 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경찰에게 돈을 제시하면 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총기사고가 빈번한데, 청부살인의 경우 한국돈으로 300만원 정도면 가능하고, 대상이 악명이 높고, 친구 중에서 총기를 소지한 사람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한국돈 50만원에 총기살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잘 알려진 도시는 경찰들이 순찰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교육 수준 등이 높아 범죄율이 낮으며, 마을 형태로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입구나 출구 쪽에는 언제나 검문소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병원, 은행, 백화점이나 가게 등에서는 사설 경비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으며, 이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다. 출입구에선 언제나 총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며, 어느 곳에서나 총을 소지하고 있는 사설경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필리핀 경제는 2014년 GDP 규모로 추산할 때 세계 39위의 규모로 2,896억 달러이다.[18] 주요 수출품으로는 반도체, 전자제품, 교통설비, 의류, 구리 제품, 석유 제품, 코코넛 오일, 그리고 과일이다.[12] 주요 무역대상국은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폴, 대한민국, 네덜란드, 홍콩, 독일, 대만, 그리고 태국이다.[12] 통화 단위는 필리핀 페소이다.(₱ 또는 PHP)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다. 전(全) 노동 인구의 5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동시에 수출용 작물을 재배한다. 쌀, 옥수수는 주식이며 아바카, 설탕, 담배, 코코넛은 중요한 수출품이다. 국민 생활의 기반이라고 둘 수 있는 농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낮은 생산성이다. 낮은 생산성의 원인 중 하나는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에 있다. 수많은 소작인들이 소작으로 생산한 곡물의 반을 지주에게 바쳐야 하는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특히 곡창지대인 중부 루손에서 소작인들의 수가 압도적인데 이들의 빈곤은 사회 불안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수출형·고용 증진형의 공업화가 1960년대 이후의 과제로 대두하였으며 계속되는 개발 계획에서는 경제 기반 정비, 투자 장려법, 중간 자본재 산업·노동 집약 산업·중소 기업·지방 산업의 육성이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아직 경공업 단계이다.
무역에서도 경제의 식민지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농산물·광산물 등 1차 산품만이 수출되고 공업 제품은 수입된다. 주요 수출품은 코프라, 설탕, 목재, 아바카, 철광석 등인데 이 중에서도 코프라, 설탕, 목재의 비중은 커 이 세 가지 품목이 총 수출량의 3분의 2나 된다. 주요 무역 대상국은 미국과 일본으로, 이들 나라는 필리핀 총 수출분의 67%, 총 수입분의 50%를 차지한다.d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 국가로서 플라자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생활 관습은 로마 가톨릭의 전통이 짙게 풍긴다. 주요 도시마다 대부분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는데 특히 필리핀의 로마 가톨릭 교회행사는 열광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에는 많은 참회자가 실제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묶고 못까지 박아 예수의 고난을 연출하기조차 한다. 한편, 사도신경에 근거하여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신자들간의 통공(communion)을 믿는 그리스도교 교의에 따라 각 바랑가이(최소 행정단위)의 수호성인을 공경하는 축제도 신앙생활의 중요한 단면이다.
미국의 영향은 무엇보다 영어의 사용이나 교육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 국민의 3/4이 영어를 할 줄 알며 학교, 정계, 재계에서도 영어가 많이 쓰인다. 교육 수준은 높은 편으로 초등 교육과 중학교 과정이 의무 교육제이며 문맹률은 10% 정도이다. 미국의 대학, 대학원으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미국과의 교수, 연구원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필리핀 사회는 빈부 격차가 다른 동남아 나라들보다 심각하여 일부 부유한 상류층은 거액의 재산을 축적했지만 빈민가 촌에는 상수도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누추한 판잣집이 가득하며 매춘과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수도 마닐라 중심부에는 옛 에스파냐 요새와 기독교 공동묘지 등 과거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사람이 많고 교통 혼잡이 극심한 편이다. 과거 미군이 철수하고 남긴지프를 개조하여 요란한 장식물을 부착한 지프니가 눈에 띄는 명물이다.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환락가에는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과 최고의 나이트클럽 등이 있다.
국어는 필리핀어(표준화된 타갈로그어), 공용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이지만, 모국어로 사용되는 언어는 합계 172개에 이른다. 이것들은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족으로 분류되지만 거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 그 밖에 사용되는 언어에는 중국어(베이징어나 푸젠어), 스페인어 식민지 시절의 스페인어와 차바카노어(스페인어 크리올), 이슬람교도 사이에 사용되는 아랍어, 말레이어가 있다. 특히 스페인어는 2008년 1월부터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며, 학교에서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필리핀은 대한민국처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고생이 되더라도 자녀들을 가르치는 나라이다. 아시아 최초의 대학교인 산토 토마스 대학교 등의 명성 있는 대학교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교육은커녕,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경우도 많다.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이 우세한 기독교 국가이며,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로마 가톨릭은 유럽의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토테미즘과 융합된 형태로 많이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면 필리핀 가톨릭에서는 십자가나 묵주 같은 상징물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로마 가톨릭 신자(83%)이며, 그 외 필리핀 성공회(영어: The Episcopal Church in the Philippines), 개신교(9%), 필리핀 독립교회등의 독립 가톨릭교회가 있다. 필리핀 성공회는 미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전래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래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필리핀 이슬람은 민다나오 섬에 많이 살고 있다. 이는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로마 가톨릭 신자를 이주시키는 종교적인 이주정책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살 곳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60년대말부터 모로민족해방전선, 모로이슬람해방전선 등의 독립 요구로 이어졌다. 그 외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정령신앙 등의 토착 종교가 있었으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거의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필리핀은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히스패닉(Hispanic, 로마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일컫는 명칭 라틴어: Hispānia의 형용사형 Hispānus에서 유래함. 오늘날 히스패닉이란 용어는 주로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의 영향은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이 영향은 문학, 민속 음악, 민속 무용, 언어, 음식, 미술, 종교에서 뚜렷하다.[21] 스페인에서 온 이민자들은 이 곳에 스페인과 멕시코의 관습, 전통, 요리 등을 도입하였다. 필리핀 요리는 아시아와 유럽 요리가 혼합된 것이다. 필리핀 전통에서 그들의 성인을 기념하는 바리오 피에스타스(Barrio fiestas)라 불리는 축제가 열린다. 가장 눈에 띄는 스페인의 유산으로서, 필리핀사람들에게는 스페인어로 된 성과 이름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색은 아시아 인들 중에서 유일한 것으로서, 식민지 시대의 칙령인 "클라베리아 칙령"(Clavería edict: 이 칙령은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성(姓)의 체계적인 배열, 스페인식 명명 체계의 실행을 담고 있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문화가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고 남부의 큰 섬인 민다나오에는 이슬람 문화가 주류를 이룬다.
오늘날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서구화된 보편적인 평상복을 주로 입지만, 중요한 자리에는 항상 필리핀 전통 상의인 바롱 따갈로그를 즐겨 입는다. 필리핀에서 축제나 기념식, 결혼식 같은 경우에 바롱 따갈로그를 입은 남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따갈로그 지방의 옷"(Baro ng Tagalog)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실제로는 줄여서 바롱이라고 말한다. 처음 2개의 단어(Baro ng)가 변해 Barong으로 변했는데, " ~의 옷"이라는 뚯이다. 바롱은 4세기에 걸쳐 변천해 왔다. 그 과정에서 아직도 옛날의 특징이 남아 있다. 우선은 얇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입을 때는 바롱 안에 셔츠를 필히 입고 바깥에 바롱을 입는다. 또 바롱의 하단을 바지 안으로 넣지 않고 항상 바깥으로 내놓은 채 입는 것이 전통적인 특징이다. 바롱을 바깥으로 내놓고 입는 것은 필리핀의 더운 기후 때문으로 풀이되지만, 스페인 식민정책의 유산이라는 설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것은 스페인 식민통치자들이 옷을 통해 쉽게 구별하기 위해 원주민들에겐 바롱을 입을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게 한 것은 옷속에 무기를 감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고, 주머니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은 도둑질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필리핀 원주민 사이에서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벌거나 농사를 크게 짓는 등 성공한 중산층이 차츰 생겨 났지만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항상 바롱을 입어야 했다. 이러한 식민통치에 대한 반발로 이들은 원래의 바롱에는 없었던 전면의 다양한 장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긴소매 앞부분 상단에 단추를 달고 입고 벗을 때 단추를 끌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주로 흰색의 천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색상이 조금씩 다양해지는 추세다.
필리핀 음식은 필리핀 사람의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필리핀에 오면 먹을 게 없다는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다른 동남아 국가처럼 자기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갖고 있기보다는 다른 여러 나라의 음식이 섞여 있다 보니 개성이 좀 모자라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의 음식은 열을 많이 가하지 않고 천연향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음식의 맛이 단순해 보인다. 필리핀사람들의 주식은 우리와 같이 쌀이다. 보편적으로 차지지 않다. 그렇다고 차진 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찹쌀인데 이름은 말락킷(Malagkit)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진 밥을 좋아 하는 한국인들은 디노라도(Dinorado)에다 말락킷을 섞어 먹는다. 디노라도 2kg에 말락킷 1kg이면 차진 밥이 된다. 가격은 상품 기준 디노라도가 상품 kg당 34페소 정도, 말락킷이 54페소 정도이다. 또한 서민들은 간식으로 '발룻' 이라는 음식을 즐겨 먹는데 이것은 부화가 되기 직전의 오리알을 삶은 음식이다.
아침 식사는 주로 판데살을 먹는다.
필리핀 사람들은 그들의 집의 청결상태와 우아함을 주위사람들에게 내어 보이기를 즐겨하고 과시하고 싶어한다. 집안에서 살림을 하는 아내들은 청결을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세제를 사용한다. 그들은 부드러운 풀로 만든 빗자루 같은 것을 쓰는데 작은 것은 벽의 장식이나 액자에 묻은 먼지를 터는데 사용되고 큰 것은 마루를 청소하는데 쓰인다. 그리고 거칠고 억센 빗자루는 물바닥 청소에 주로 이용된다. 닭털로 만들어진 먼지떨이는 작은 조각이나 장식들의 먼지를 터는 데 사용된다. 그 외에도 양동이 나무 손잡이가 달린 억센 솔, 버놋(코코넛 껍질), 쓰레받이, 빨래비누, 구고(옛날에 쓰여진 샴푸), 이스이스 잎사귀, 바나나 잎, 등유, 코코넛 기름 등이 집안에 사용되었다. 마루용 왁스는 집안 관리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초, 등유 등을 녹여서 만든다.
필리핀의 교통에서는 해운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박의 항행으로 국토가 이어지고 통일되기 때문이다. 육상 교통으로는 철도가 루손 섬, 파나이 섬에서 경영되고 있다. 자동차 도로도 루손 섬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해 있다.[22] 대중교통으로는 지프니, 버스, UV 익스프레스, 택시, 트라이시클(삼륜차) 등이 있는데, 버스는 노선은 정해져 있지만 정류장은 없어 사실상 어디서나 타고 내릴 수 있으며, 차종도 단일화 되어있지 않다. 트라이시클은 과거 할리데이비슨 경찰 패트롤처럼, 오토바이 측면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따로 칸을 달아놓은것으로, 택시처럼 가고싶은 곳으로 갈 수 있으나, EDSA같은 큰 길은 다닐 수 없으며, 운항 가능 거리도 짧다. 운임은 싸지만, 거리를 생각해 보면 싸지만은 않은 편이다. 최근에는 해상 운송 사고 예방 대책에 따른 대안으로 항공 교통도 일본과 비슷하게 발전되어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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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1억 명으로,[2]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또한, 약 1,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존재한다. 선사시대에 필리핀에 거주했던 사람들 중에는 네그리토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스트로네시아어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착했고, 말레이인의 문화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이 전래되었다. 또한, 무역으로 중국 대륙의 문화가 필리핀에 영향을 끼쳤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식민 지배 동안에 마닐라는 아카풀코와의 무역 연결점이 되었으며, 필리핀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동안 유지된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과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전해졌다.
필리핀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 사정이 좋은 나라였으나, 마르코스 정권의 독재와 부패, 과도한 빈부 격차로 인해 경제적으로 몰락했다. 수도는 메트로 마닐라이며, 공용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이다.
우라늄 동위원소측정법으로 6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칼라오 원인의 중족골은 오늘 날까지 이 제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물이다.[3] 이전까지는 탄소동위 원소 측정법으로 약 24,0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팔라완에서 발견된 타본 원인이 가장 오래된 인류였다.[4][5] 네그리토인들은 또한 이 제도에 정착한 가장 초기의 사람들이었지만, 필리핀 제도에서 그들의 초기 정착은 언제였는 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6]
고대 필리핀인들의 기원에 대해 상반되는 여러 개의 학설이 있다. 가장 널리 수용되는 언어학적, 고고학적 증거는 “타이완 유래설 모델”이며, 이것은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량주 문화[7] 와 같은 양쯔강의 신석기 문명으로부터 온 후손이라는 타이완에서 왔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들은 필리핀에 기원전 4000년 전에 왔다고 하는 것이다.[8][9] 기원 전 1000년경에, 이 제도에 살던 사람들이 네 개의 사회 집단으로 발전했으며, 사냥-채집을 하는 종족, 전사 사회, 고원 금권정치, 그리고 해양 항구 집단으로 나눠졌다는 것이다.[10]
여러 섬에 각기 다른 부족들이 나뉘어 있어 통일 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1521년에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 도중 막탄섬에 상륙하면서 유럽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이후 에스파냐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으며, 19세기 말까지 300년 이상 계속된 에스파냐의 통치는 필리핀을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교회 국가로 만들어서, 필리핀은 수도사의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름은 필립 2세 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나 에스파냐에서 온 식민통치 권력과 결탁하여, 종교권력을 휘두르는 교회의 압제에 항거하여 필리핀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19세기 말 시작되어 각지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괌 등 지배권을 양도했다.
필리핀 혁명과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필리핀인의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제1공화국이 건립되었으나 곧바로 미국의 불인정과 함께 식민화가 시작되어 이에 저항하는 필리핀인과 미국-필리핀 전쟁이 일어났다.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지휘아래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많은 희생자를 낳고 굴복하여 필리핀 제 1공화국은 붕괴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많은 희생으로 인해 미국의 통치는 스페인식 압제보다는 좀 더 자치권을 많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1916년 필리핀의 자치법인 존스 법이 통과되었으며 이때의 미국의 필리핀 통치는 다른 서양국가와는 달리 비교적 자율적인면이 있었다. 그리고 필리핀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식민지였기 자체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하지못해 바라던 만큼의 이익을 얻을수없었다. 미국의 식민통치때는 공중보건 개선과 무료 보건소 혜택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었고 이로인해 인구도 큰폭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같이공부할수 있는 남녀공학제도 도입 되면서 남성과 여성 도 똑같은 권리를 누리게되어 처녀도 혼자 외출할 수 있었으며 여러 전문직을 비롯해 어떤직장에서나 평등하게 일할 수 있게되었다. 새 토지 정책, 미국과의 자유무역, 농업성장,교통 통신의 발달, 새로운 산업, 은행의 등장, 공중보건과 위생의 향상등으로 인해 인구가 약 3배 가까이 늘었으며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 후에도 로마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이 주동하는 필리핀 민중들의 독립투쟁은 계속되고[11] 혁명 정부도 수립되었으나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34년 미국 의회에서 타이딩스-맥더피 법이 통과되어 10년 후에 필리핀 독립이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1935년에는 필리핀 연방이 조직되었고 마누엘 케손이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은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일본은 1943년에 필리핀 독립을 승인했고 대통령에는 호세 파키아노 라우렐이 선출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마누엘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뒤 필리핀은 아시아권에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정치적/경제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필리핀은 미국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대신, 공군/해군기지를 빌려주기로 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초 마르코스는 '민주 공화국'을 내세우고, 효율적 세제운영과 대외차관 유치 등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해 이슬람세력 등 반정부세력들의 반발에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독재와 장기집권, 본인과 일가의 부정부패로 인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외에서 거센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암살을 계기로 마르코스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고, 1986년 베니그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가 야당 단독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자 숱한 선거부정으로 겨우 재선됐다. 이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었고, 결국 마르코스는 하야했다.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임기 초반부터 테러가 일어나,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92년에는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피델 라모스가 대통령이 되었고, 1998년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대통령이 되지만, 부패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 2001년 중도사임했다.
에스트라다의 사임으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의 딸인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하지만, 부패에 연루되어 결국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현재는 하원의원으로 재직중이다.
2010년 코라손 대통령의 아들인 노이노이 아키노가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아로요는 선거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2]).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의 동북단에 있으며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대륙 사이에 자리 잡은 7,10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무인도에 불과해 사람이 사는 섬은 약 880개뿐이며 이름이 붙여진 섬도 약 2,700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필리핀 군도의 섬들은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 활동도 활발하다. 섬들의 지형은 대체로 산이 많으며, 평야는 해안에 접한 저지대를 흐르는 하천 유역에 한정되어 있어서 농경지는 별로 없다. 가끔 농경지가 발견되어도 거의 계단식의 형태를 띠고 있을것이다.
필리핀은 화산 덕택으로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많다. 특히 이 나라 최대의 섬인 루손 섬의 마욘 산은 원뿔형의 활화산으로 무척 아름답다. 루손 섬과 민다나오 섬의 면적이 전 국토의 70%를 차지한다.
열대성이며 몬순과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1년 내내 기온이 높은 마닐라의 연평균 기온은 27도이다. 몬순은 6월부터 10월까지는 남서에서, 11월부터 3월 말까지는 북동에서 불어온다.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며 군도의 동쪽과 서쪽에서는 건기와 우기가 서로 엇갈린다. 태풍은 7월에서 10월까지의 시기에 내습하는데 특히 루손 섬은 매년 태풍의 통로가 되고 있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필리핀인 중 28.1%는 타갈로그 족, 13.1%가 세부아노 족, 일로카노 족 9%, 비사야 족 7.6%, 힐리가이논 족 7.5%, 비콜 족 6%, 와라이 족 3.4%, 그리고 25.3%가 기타로 구성되어 있다.[12][13]
이것은 다시 보다 뚜렷한 비종족 집단으로 쪼개어져 나눌 수 있으며, 모로 족, 카팜팡안 족, 팡가시난 족, 이바나그 족 그리고 이바탄 족으로 나눌 수 있다.[14] 뿐만 아니라, 이고로트 족, 루마드 족, 망간 족, 바자우 족, 그리고 팔라완의 부족과 같은 토착민들도 존재한다.[15] 아에타 족과 아티 족 같은 네그리토들은 이 제도에 초기에 정착한 고대 민족으로 여겨진다.[16]
이들 민족 외에 10%는 화교와 메스티소라고 불리는 혼혈족이 차지한다. 화교가 경제생활에 공헌하고 있다면 메스티소는 경제적으로 윤택하며 고등 교육을 받아 사회적으로도 상류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는 85%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신봉한다. 이 밖에 군도의 남쪽에 거주하는 모로족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도이프가오족 등의 민족은 정령을 숭배한다. 복잡한 민족만큼이나 언어 또한 많아 7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 타갈로그어이다. 필리핀 국민은 말레이족을 근간으로 하여 중국인, 미국인, 스페인인 및 아랍 혈통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5월 기준으로 필리핀 인구는 7천6백5십만명이며 각 인종의 구별은 거의 없다. 서구 국가의 오랜 식민 통치 역사와 무역 상인들의 혈통이 섞여 외모와 문화 모두에서 동양과 서양이 독특하게 혼합된 국민이 나타났다. 중국어 사용 주민도 조금 있다.
필리핀 국민의 특성은 실제로 모든 문화가 조금씩 섞여 있다. 필리핀인들의 유명한 친족 정신은 말레이족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긴밀한 가족 관계는 중국인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경건한 신앙심은 16세기 기독교를 전파한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았다. 타갈로그어가 공식 국가언어라면 영어는 비공식 언어로 간주된다.
필리핀 민족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지역에 따라 구별되며 각 지역적 집단은 상이한 풍습과 방언을 통해 구별할 수 있다. 북부 지역의 일로카노 주 지역 주민은 강건하고 검소하며. 중부 평야지대의 타갈로그 주민은 근면하다. 중부지역 섬으로부터 비사야의 주민들은 낙천적이며 민다나오 지역에는 각색의 원주민과 경건한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원주민 부족 공동체는 군도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적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세분되는 필리핀에는 111 종 이상의 방언이 존재한다.
필리핀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문화 혼합 지역이다. 전통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공존한다. 민족의 배경에는 인도네시아계 민족과 말레이계 민족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중국과 스페인계 혈통의 영향도 받았다. 미국 통치 및 무역 상인들과의 접촉 역사를 통해 동양과 서양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으며 이러한 영향은 필리핀 국민의 외모와 문화에 나타난다.
필리핀 전국의 행정 조직은 17개 지방(Region), 81개 주(Province), 117개의 시(City), 1,501개 지방 자치체(Municipality), 41,982개 마을(Barangay, 바랑가이)이 운영 중이다.
수도는 14개 시와 3개 읍으로 구성된 메트로 마닐라이다. 메트로 마닐라통괄하는 행정 기관은 메트로 마닐라 개발국(Metro Manila Developement Authority, MMDA)으로 광역 행정 업무를 협의, 조정하고 있다.
1965년 대통령에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73년 국민 투표를 통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20년 장기독재 끝에 1986년 2월 민중들과 필리핀의 전통 교회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중항쟁으로 마르코스가 축출되고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신정부가 출범했다.
1987년 2월 필리핀 신헌법에 대한 국민 투표에서 아키노 정부는 76.3%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3권분립의 대통령 중심제에 대통령의 임기 6년, 중임 불가를 규정한 새 헌법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산당과의 소모적인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인 공산당 합법화 등의 공산주의에 대한 유화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군부 쿠데타가 반발하고 우파 세력의 반발이 거세지자 아키노 대통령은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좌파·공산세력도 이에 강경으로 대처했다. 외교정책은 독립 후 친미 정책으로 일관했다. 1966년에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에 가맹하고, 1967년에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에 가입했다. 1970년대부터 독립 외교를 표방하고 중국·소련과의 광범위한 관계 수립, 동남아 제국 및 일본과의 관계 유지, 미국과의 균형관계 모색 등을 골자로 하는 신외교정책을 1973년 선언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코라손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라모스가 당선됐으며 1998년 5월에는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당선되었다. 2001년 1월 아로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사바주 일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외교문제화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17]
필리핀의 치안은 불안 요소가 존재 한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반면에 경찰력은 상당히 약하다. 경찰은 마을의 게이트를 지키거나 경찰서와 순찰자를 이용하여 거리 치안과 범죄를 예방하나, 작은 범죄(소매치기, 사소한 다툼) 등은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게에는 안전요원이 배치돼있다. 안전요원은 가게주와 계약을 맺고 손님과 가게를 보호한다. 가끔씩 범죄가 일어날 경우 가지고 있는 총기를 이용해 관광객이나 행인을 보호하기도 한다. 컨테이너 박스나 가게 앞에 서서 문을 열어주거나 화장실을 안내해주는 도시 안내원 역할도 하고 있다. 그들의 셔츠 주머니에는 Fisher, Security 등 안전 요원을 뜻하는 단어가 쓰여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키는 도시에도 관광객이나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범죄가 꾸준히 발발하는 등 치안상태는 불안하다고 할 수있다.
원칙적으로는 징병제이다. 2009년 1월 31일부터 육군, 해군, 공군 모두 모병제(지원제)이나, 대학 졸업자는 예비군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18~25세를 대상으로 징병하였다. 장교로는 21~29세까지 모집한다. 미혼 필리핀 시민권자 (기혼 시민권자나 외국인 입대 금지)이면 남녀 모두 입대 가능하다. 이후 예비역으로는 56세까지 소속된다.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이후, 근래에는 거의 예비역으로만 소집된다. 2010년 이후 헌법 상 완전히 폐지할 계획이다. 중산층가정의 기준인 경찰PO2기준 급여는 2만페소 약 50만원정도이다.(2017년기준)
이 나라는 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할 수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총기 소지에 대한 마땅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어린이들도 일반 총포점에서 탄약을 살 수 있다. 총포점은 큰 상가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많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더욱 위험하다. 택시 탑승이나, 밤늦게 거리에서 산책하는 일은 위험하며, 위협하는 일이 있어도 실랑이를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 세부등 관광지라도 호텔주변에 대해서는 오후 6시이후의 외출은 대단히 위험하다.(2015년기준)
모순되게도 총기를 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경찰에게 돈을 제시하면 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총기사고가 빈번한데, 청부살인의 경우 한국돈으로 300만원 정도면 가능하고, 대상이 악명이 높고, 친구 중에서 총기를 소지한 사람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한국돈 50만원에 총기살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잘 알려진 도시는 경찰들이 순찰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교육 수준 등이 높아 범죄율이 낮으며, 마을 형태로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입구나 출구 쪽에는 언제나 검문소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병원, 은행, 백화점이나 가게 등에서는 사설 경비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으며, 이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다. 출입구에선 언제나 총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며, 어느 곳에서나 총을 소지하고 있는 사설경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필리핀 경제는 2014년 GDP 규모로 추산할 때 세계 39위의 규모로 2,896억 달러이다.[18] 주요 수출품으로는 반도체, 전자제품, 교통설비, 의류, 구리 제품, 석유 제품, 코코넛 오일, 그리고 과일이다.[12] 주요 무역대상국은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폴, 대한민국, 네덜란드, 홍콩, 독일, 대만, 그리고 태국이다.[12] 통화 단위는 필리핀 페소이다.(₱ 또는 PHP)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다. 전(全) 노동 인구의 5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동시에 수출용 작물을 재배한다. 쌀, 옥수수는 주식이며 아바카, 설탕, 담배, 코코넛은 중요한 수출품이다. 국민 생활의 기반이라고 둘 수 있는 농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낮은 생산성이다. 낮은 생산성의 원인 중 하나는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에 있다. 수많은 소작인들이 소작으로 생산한 곡물의 반을 지주에게 바쳐야 하는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특히 곡창지대인 중부 루손에서 소작인들의 수가 압도적인데 이들의 빈곤은 사회 불안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수출형·고용 증진형의 공업화가 1960년대 이후의 과제로 대두하였으며 계속되는 개발 계획에서는 경제 기반 정비, 투자 장려법, 중간 자본재 산업·노동 집약 산업·중소 기업·지방 산업의 육성이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아직 경공업 단계이다.
무역에서도 경제의 식민지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농산물·광산물 등 1차 산품만이 수출되고 공업 제품은 수입된다. 주요 수출품은 코프라, 설탕, 목재, 아바카, 철광석 등인데 이 중에서도 코프라, 설탕, 목재의 비중은 커 이 세 가지 품목이 총 수출량의 3분의 2나 된다. 주요 무역 대상국은 미국과 일본으로, 이들 나라는 필리핀 총 수출분의 67%, 총 수입분의 50%를 차지한다.d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 국가로서 플라자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생활 관습은 로마 가톨릭의 전통이 짙게 풍긴다. 주요 도시마다 대부분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는데 특히 필리핀의 로마 가톨릭 교회행사는 열광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에는 많은 참회자가 실제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묶고 못까지 박아 예수의 고난을 연출하기조차 한다. 한편, 사도신경에 근거하여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신자들간의 통공(communion)을 믿는 그리스도교 교의에 따라 각 바랑가이(최소 행정단위)의 수호성인을 공경하는 축제도 신앙생활의 중요한 단면이다.
미국의 영향은 무엇보다 영어의 사용이나 교육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 국민의 3/4이 영어를 할 줄 알며 학교, 정계, 재계에서도 영어가 많이 쓰인다. 교육 수준은 높은 편으로 초등 교육과 중학교 과정이 의무 교육제이며 문맹률은 10% 정도이다. 미국의 대학, 대학원으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미국과의 교수, 연구원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필리핀 사회는 빈부 격차가 다른 동남아 나라들보다 심각하여 일부 부유한 상류층은 거액의 재산을 축적했지만 빈민가 촌에는 상수도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누추한 판잣집이 가득하며 매춘과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수도 마닐라 중심부에는 옛 에스파냐 요새와 기독교 공동묘지 등 과거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사람이 많고 교통 혼잡이 극심한 편이다. 과거 미군이 철수하고 남긴지프를 개조하여 요란한 장식물을 부착한 지프니가 눈에 띄는 명물이다.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환락가에는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과 최고의 나이트클럽 등이 있다.
국어는 필리핀어(표준화된 타갈로그어), 공용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이지만, 모국어로 사용되는 언어는 합계 172개에 이른다. 이것들은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족으로 분류되지만 거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 그 밖에 사용되는 언어에는 중국어(베이징어나 푸젠어), 스페인어 식민지 시절의 스페인어와 차바카노어(스페인어 크리올), 이슬람교도 사이에 사용되는 아랍어, 말레이어가 있다. 특히 스페인어는 2008년 1월부터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며, 학교에서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필리핀은 대한민국처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고생이 되더라도 자녀들을 가르치는 나라이다. 아시아 최초의 대학교인 산토 토마스 대학교 등의 명성 있는 대학교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교육은커녕,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경우도 많다.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이 우세한 기독교 국가이며,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로마 가톨릭은 유럽의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토테미즘과 융합된 형태로 많이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면 필리핀 가톨릭에서는 십자가나 묵주 같은 상징물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로마 가톨릭 신자(83%)이며, 그 외 필리핀 성공회(영어: The Episcopal Church in the Philippines), 개신교(9%), 필리핀 독립교회등의 독립 가톨릭교회가 있다. 필리핀 성공회는 미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전래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래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필리핀 이슬람은 민다나오 섬에 많이 살고 있다. 이는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로마 가톨릭 신자를 이주시키는 종교적인 이주정책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살 곳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60년대말부터 모로민족해방전선, 모로이슬람해방전선 등의 독립 요구로 이어졌다. 그 외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정령신앙 등의 토착 종교가 있었으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거의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필리핀은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히스패닉(Hispanic, 로마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일컫는 명칭 라틴어: Hispānia의 형용사형 Hispānus에서 유래함. 오늘날 히스패닉이란 용어는 주로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의 영향은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이 영향은 문학, 민속 음악, 민속 무용, 언어, 음식, 미술, 종교에서 뚜렷하다.[21] 스페인에서 온 이민자들은 이 곳에 스페인과 멕시코의 관습, 전통, 요리 등을 도입하였다. 필리핀 요리는 아시아와 유럽 요리가 혼합된 것이다. 필리핀 전통에서 그들의 성인을 기념하는 바리오 피에스타스(Barrio fiestas)라 불리는 축제가 열린다. 가장 눈에 띄는 스페인의 유산으로서, 필리핀사람들에게는 스페인어로 된 성과 이름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색은 아시아 인들 중에서 유일한 것으로서, 식민지 시대의 칙령인 "클라베리아 칙령"(Clavería edict: 이 칙령은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성(姓)의 체계적인 배열, 스페인식 명명 체계의 실행을 담고 있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문화가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고 남부의 큰 섬인 민다나오에는 이슬람 문화가 주류를 이룬다.
오늘날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서구화된 보편적인 평상복을 주로 입지만, 중요한 자리에는 항상 필리핀 전통 상의인 바롱 따갈로그를 즐겨 입는다. 필리핀에서 축제나 기념식, 결혼식 같은 경우에 바롱 따갈로그를 입은 남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따갈로그 지방의 옷"(Baro ng Tagalog)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실제로는 줄여서 바롱이라고 말한다. 처음 2개의 단어(Baro ng)가 변해 Barong으로 변했는데, " ~의 옷"이라는 뚯이다. 바롱은 4세기에 걸쳐 변천해 왔다. 그 과정에서 아직도 옛날의 특징이 남아 있다. 우선은 얇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입을 때는 바롱 안에 셔츠를 필히 입고 바깥에 바롱을 입는다. 또 바롱의 하단을 바지 안으로 넣지 않고 항상 바깥으로 내놓은 채 입는 것이 전통적인 특징이다. 바롱을 바깥으로 내놓고 입는 것은 필리핀의 더운 기후 때문으로 풀이되지만, 스페인 식민정책의 유산이라는 설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것은 스페인 식민통치자들이 옷을 통해 쉽게 구별하기 위해 원주민들에겐 바롱을 입을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게 한 것은 옷속에 무기를 감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고, 주머니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은 도둑질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필리핀 원주민 사이에서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벌거나 농사를 크게 짓는 등 성공한 중산층이 차츰 생겨 났지만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항상 바롱을 입어야 했다. 이러한 식민통치에 대한 반발로 이들은 원래의 바롱에는 없었던 전면의 다양한 장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긴소매 앞부분 상단에 단추를 달고 입고 벗을 때 단추를 끌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주로 흰색의 천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색상이 조금씩 다양해지는 추세다.
필리핀 음식은 필리핀 사람의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필리핀에 오면 먹을 게 없다는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다른 동남아 국가처럼 자기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갖고 있기보다는 다른 여러 나라의 음식이 섞여 있다 보니 개성이 좀 모자라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의 음식은 열을 많이 가하지 않고 천연향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음식의 맛이 단순해 보인다. 필리핀사람들의 주식은 우리와 같이 쌀이다. 보편적으로 차지지 않다. 그렇다고 차진 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찹쌀인데 이름은 말락킷(Malagkit)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진 밥을 좋아 하는 한국인들은 디노라도(Dinorado)에다 말락킷을 섞어 먹는다. 디노라도 2kg에 말락킷 1kg이면 차진 밥이 된다. 가격은 상품 기준 디노라도가 상품 kg당 34페소 정도, 말락킷이 54페소 정도이다. 또한 서민들은 간식으로 '발룻' 이라는 음식을 즐겨 먹는데 이것은 부화가 되기 직전의 오리알을 삶은 음식이다.
아침 식사는 주로 판데살을 먹는다.
필리핀 사람들은 그들의 집의 청결상태와 우아함을 주위사람들에게 내어 보이기를 즐겨하고 과시하고 싶어한다. 집안에서 살림을 하는 아내들은 청결을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세제를 사용한다. 그들은 부드러운 풀로 만든 빗자루 같은 것을 쓰는데 작은 것은 벽의 장식이나 액자에 묻은 먼지를 터는데 사용되고 큰 것은 마루를 청소하는데 쓰인다. 그리고 거칠고 억센 빗자루는 물바닥 청소에 주로 이용된다. 닭털로 만들어진 먼지떨이는 작은 조각이나 장식들의 먼지를 터는 데 사용된다. 그 외에도 양동이 나무 손잡이가 달린 억센 솔, 버놋(코코넛 껍질), 쓰레받이, 빨래비누, 구고(옛날에 쓰여진 샴푸), 이스이스 잎사귀, 바나나 잎, 등유, 코코넛 기름 등이 집안에 사용되었다. 마루용 왁스는 집안 관리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초, 등유 등을 녹여서 만든다.
필리핀의 교통에서는 해운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박의 항행으로 국토가 이어지고 통일되기 때문이다. 육상 교통으로는 철도가 루손 섬, 파나이 섬에서 경영되고 있다. 자동차 도로도 루손 섬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해 있다.[22] 대중교통으로는 지프니, 버스, UV 익스프레스, 택시, 트라이시클(삼륜차) 등이 있는데, 버스는 노선은 정해져 있지만 정류장은 없어 사실상 어디서나 타고 내릴 수 있으며, 차종도 단일화 되어있지 않다. 트라이시클은 과거 할리데이비슨 경찰 패트롤처럼, 오토바이 측면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따로 칸을 달아놓은것으로, 택시처럼 가고싶은 곳으로 갈 수 있으나, EDSA같은 큰 길은 다닐 수 없으며, 운항 가능 거리도 짧다. 운임은 싸지만, 거리를 생각해 보면 싸지만은 않은 편이다. 최근에는 해상 운송 사고 예방 대책에 따른 대안으로 항공 교통도 일본과 비슷하게 발전되어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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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츠부르크 간판이 유명한 #게트라이데거리 장인이 만든 간판으로 꾸며진 거리~~ 고급진 간판이 #예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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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앓이② 비가와서 제대로 둘러보지못하고 아쉬웠던 #잘츠부르크 다시 가고싶은 도시중 한곳이지라 #2013#오스트리아#게트라이데거리 #모차르트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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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mi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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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j933
가장 아름다운 간판들이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 맥도날드 간판도 고급지던 ㅋㅋㅋ #유럽#유럽여행#오스트리아#짤츠부르크#게트라이데거리#Europe#Austria#Salz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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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_eu
#오스트리아 #salzburg #게트라이데거리 #간판 이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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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ansi
예쁜 간판으로 유명한 짤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 사전조사없이 할슈타트를 가기위해 들렸던 도시가 짤츠부르크였는데 의외로 구석구석이 예쁘고 좋아서 비엔나는 진짜 심심했는데 오히려 여길 더 오래 머물껄 ..아쉬움이 컸던 곳이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게트라이데거리#크리스마스#유럽여행#유럽#신혼여행#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유럽#christmastime#christmas#austria#salzburg#getreidega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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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_insight
. . Classic McDonald's . 이렇게 고전적인 맥도날드 보신적 있나요 . . #일요병엔폭풍업뎃이답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거리 #유럽여행 #여행 #세계일주 #세계여행 #여행스타그램 #추억스타그램 #여행에세이 #austria #salzburg #getreidegasse #instago #instatravel #discover #travel #trip #travelblogger #travel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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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sohit
그렇게 먹고싶던 #김치찌개 드디어 먹음!! 식당이름이 #kim168 이라서 성이 김씨고 신장이 168cm인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인줄 알았는데....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인이 주방장이었다. 김치찌개에서 단맛나는거아닌가 걱정하면서 먹었는데 김치가 빼박 한국김치...ㅠㅠㅠ 떡사리도 들어가있음!! 존맛!!!! #salzburg #한식당 #게트라이데거리
그렇게 먹고싶던 #김치찌개 드디어 먹음!! 식당이름이 #kim168 이라서 성이 김씨고 신장이 168cm인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인줄 알았는데....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인이 주방장이었다. 김치찌개에서 단맛나는거아닌가 걱정하면서 먹었는데 김치가 빼박 한국김치...ㅠㅠㅠ 떡사리도 들어가있음!! 존맛!!!! #salzburg #한식당 #게트라이데거리
vazzi_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게트라이데거리 #모차르트생가 #Austria #Salzburg #Mozart #Getreidegasse #GetreideStreet #MozartsGeburts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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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_zero_5
#travel #eurotrip #happyday #memory #art #europe #Austria #Salzburg #music #Wolfgang Amadeus Mozart #Getreidegasse #getreidestreet #mozartsgeburtshaus #soundof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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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zz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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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rose_sparkle
#getreidegasse #getreidestreet #salz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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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rose_sparkle
#getreidegasse #getreidestreet #salz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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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anas_j
2o11 유니크한 맥도날드 . . . #GetreideStreet #Salzburg #Austria #Europe #게트라이데거리 #짤츠부르크 #오스트리아 #유럽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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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eon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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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elier_de_samuel
#salzburg #getreide #getreidegasse #getreidestreet #austria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게트라이데거리 #오스트리아 새해를 해외에서 맞이하는건 대만에 이어 두번째 였다. 새해가 되자 온세상을 폭죽연기로 가득채우던 사람들.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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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lygo
#FastFood 안 좋아하는 나였는데 집 떠나보니 제일 만만한게 이거더라. 일년동안 먹는게 한 손에 꼽혔는데 한달동안 두손 가득 꼽혔다는것. 여기 매장은 이용 안했지만 너무 고급진 느낌이라 처음엔 #맥도날드 아닌줄 알았다. 이 거리의 상점들의 간판이며 건물들이 모두 고풍스런 느낌이라 거리 구경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유럽 #배낭여행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거리 #Austria #Salzburg #GetreideStreet #Mcdona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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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olstagram_
#salzburg #austria #travelgram #instago #instasize #instatravel #travel #Getreidegasse #GetreideStreet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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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rlet_hong
#게트라이데 거리 #GetreideStreet #오스트리아 #austria #짤츠부르크 #salzburg #여행 #데일리그램 #daily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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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europetourleader
#GetreideStreet #Salzburg #Austria #Jack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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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_sooooo
거리의 간판들이 어쩜이리 귀여웡 ㅜㅠ 간판들 보는 재미로 계속 걸어다녔당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SALZBURG #게트라이데거리 #GETREIDESTREET
거리의 간판들이 어쩜이리 귀여웡 ㅜㅠ 간판들 보는 재미로 계속 걸어다녔당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SALZBURG #게트라이데거리 #GETREIDESTREET